A형의 이야기이다.
눈발 이야기다.
벚꽃 이야기다.
처음 발령을 받아 갔을 때부터 A형은 선배라는 사실만으로도 친근하게 대해줬다.
더구나 동명이었기에 주변동료들은 큰 A, 작은 a라고 불렀다.
가끔 A형과 함께 근무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공부를 하는 것을 알고부터는 나의 열렬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기회가 되면 A형도 법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과 함께 승무를 할 때는 언제든지 책을 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몇 번 사양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한 듯 그렇게 하고 있었다.
대견하게 봐주는 데에 용기를 얻었고
민법이 어떠네 하면서 어쭙잖은 지식으로 강의(?)를 하곤 했다.
강원도 고한역과 추전역(우리나라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역이다)사이에 정암터널이 있다.
국내에서 제일 긴 터널이었다.
낭만적으로 이야기 하면 고한에서 진입하여 4킬로미터나 되는 터널을 빠져나와 추전 방향으로
나오는 순간 새하얀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
요즘 태백산 눈꽃축제가 열리는 곳이 바로 그 주변이라고 생각하면
맞다.
고역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늘 어두움을 가까이에 두는가보다.
어느 날, 새벽녘
쌍둥이 전기기관차(기관차 한대당 5천마력 정도로 두 대를 연결하여 만 마력 정도의 힘을 가지게 기관차를 구성)에 석탄을 실은 화차를 잔뜩 연결하여 추전에서 출발하여 고한 방향으로 운행 중이었다.
통상적으로 긴 터널은 입구쪽이 터널 한가운데보다 낮게 만들어져있다.
아마도 터널공사시에 발생하는 돌 더미 등을 쉽게 외부로 배출하기 위함과 배수의 목적이었으리라 …
그날도 마찬가지로 나는 책을 보거나 졸거나 하면서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A형은 피곤하지 않게 한다며 수지침을 손바닥과 머리 쪽에 놓고 운전 중이었고…
당시엔 수지침이 유행이었다.
형은 수지침에 조예가 있었다.
터널 한 가운데쯤 왔을 때 비상브레이크가 작동되었다.
공기 호스가 파열된 것이다.
놀라 벌떡 일어섰다.
어느새 랜턴과 여분의 공기호스를 챙겨 기관차 밖으로 나가던 형은
” 너는 그냥 책이나 보고 있어” 라고 하였다.
한참 후
돌아온 A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새까만 손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석탄을 실은 열차가 운행하는 터널 안에는 열차에서 날린 탄가루가 쌓여져 있어 발이 푹푹 빠질 정도이다.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위험한 순간에도 …
아무렇지 않게 책을 보라고 하는 저 담대함.
집중력
담대함
배려심
바깥 풍경만큼이나 마음이 깜깜해졌다.
몇 년이 지난 후
고향선배의 대학 선배가 A형과 함께 법무사 교육을 받을 때
신림동 고시원에서의 수험생활을 이야기하자
혹시 a를 아느냐고 A가 물었다는 것이다.
사직한 후 A형과 소식이 끊어졌던 나는 보은으로 갔다.
속리산자락 식당에서 오랜만의 해후…
수년이 흘렀지만 A형은 당시에 내가 했던 한마디 한마디를 잊지 않고 있었다.
당시 나의 어록을 만들어 머릿속에 간직한 듯이…
대단했다.
부끄러웠다.
또 못 본채 수년이 흘렀다.
늘 한편에서 나를 기억해준 사람이었음에도…
큰 A는 늘 작은 a에게 감동만 주었다.
A형을 만나야겠다.
가까운 시일에…
깜깜한 터널에서의 그 마음을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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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흩날리던 하얀 눈처럼
벚꽃이 휘날리면
법령선이 선명하게
미소 짓던
A형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