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도구

 

 

안 사장과 강 전무가 떠났다.

이미 수십명의 운전기사도 회사를 떠났다.

구조조정이 시작되기도 전에 …

 

12일 만근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임금과 상여금이 삭감되면 퇴직금이 줄어 들 것이란 소문도 …

장기근속으로 성실하게 근무했던 직원들이 스스로 사직서를 썼다.

 

강 전무가 해임되던 날

마지막으로

 

‘자신이 떠나더라도 노동조합에서 살생부를 만들어서 해고를 작정하고 있다는데 제발 그 짓은 하지 말라’고 하자

‘명심하겠다’고  했다던 진 사장은 채 1개월도 되지 않아 관리부 직원 전부에게 일괄 사직서를 제출하게 했다.

 

모두 사직서를 썼다.

그리고 선별적으로 사직처리가 되었다.

강 전무의 끄나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폭이라던 영업부 직원들은 그대로였다.

그렇게도 그들을 정리하라고 했던 노조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힘없는 직원들만 다 해고된 것이다.

약한 그들이 바로 그동안 노조에 찍힌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웃음이 나는 일이다.

이제 모든 인사는 노조에서 좌지우지했다.

아니 진 사장을 등에 업은 신황수에 의해서 …

 

끝까지 살아남을 것 같던  관리부의 김 부장도 노조의 압박에 견딜 수 없었다.

살아남지 못했다.

장 상무는 현금정산실에서 동전을 헤아린다 했다.

그래도 살아남았다.

후배들을 위해서 차라리 진 사장에게 그동안의 모든 진실을 토로하고 그만두는 것이 마지막 남은 명예가 된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또다시 사직서의 2차 선별처리가 있다는 소문이다.

이제 어느 누가 회사를 위해서 충심을 다할까?

관리직의 막내든 간부든…

노조의 눈 밖에 난 것이 빌미가 되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다면…

단지 직원으로서 강 전무의 지시를 따르고 일한 것이 죄가 된다면…

노조를 등에 업고 진 사장을 등에 업은 신황수의 횡포가 모든 행위를 정당화 시킨다면…

 

노원역을 지날 때면 문득 안 사장의 실루엣이 보였다.

이른 아침 교통정리를 하던 …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적장의 예우는 없었다.

강 전무가 물러난 후 함께 근무하였던 관리직들은 모두 실업자가 되었다.

김단수의 추락이 예상될 때 나는 허사무장과 이런 대화를 했었다.

 

김단수가 떠나더라도 적장의 예우는 갖추어줘야 한다고 …

회사에서도,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만 후배 노조간부들도 명예스러운 퇴진이 준비된다고 …

그러나 적장의 예우는 이긴 자가 가진 재량이었다.

배려하려는 자만이 베풀 수 있는 의지였다.

분명 노원운수에서 적장의 예우는 없었다.

이긴 자 마음대로였다.

 

관리부로 공문을 보냈다.

그동안의 자문계약을 계속해준데 대하여 감사하다는 내용과 다른 자문계약과는 달리 경영진의 신뢰가 가장 중요시 되는 노무자문계약에 있어서

현재 경영진과 관리직의 대대적인 개편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자문계약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회사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자문노무사가 아니라 회사의 한 가족으로서 …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던 회사와의 인연 …

그리고 경영진의 퇴진

모두가 나의 잘못인 것 같았다.

 

그러나

김단수가,

신황수가,

왜 그렇게 안 사장과 강 전무에게 반감을 가졌는지…

 

김단수는 왜

사직서마저 들고 와서

의탁하려했는지를…

횡포처럼 부리던

자존심을 다 버리고

읍소를 했는지를

그 이유를

진 사장은 알기나 할까?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회사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회사를 살리고자 구조조정을 한다는 공고를 냈다.

제1노조는 노조원들을 존경하며 전임자급여에 대한 유언비어로 노조를 와해하려는 세력에 대해서 좌시하지 않겠다며

조합장의 급여명세표를 첨부하여 공고를 했다.

 

제2노조도 구조조정을 위하여 권한을 제1노조에 위임한다는 성명서를 게시하였다.

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인지는 몰라도 …

구조조정은 성공하려는 듯 보인다.

오랑케 수의 감소에서 만큼은…

 

오랑케 한 명의 사직서와 또 한 명의 해고통보서를  보류하고

그 대신 수백명의 어린 오랑케들에게 사직서를 받을 것이다.

 

기업의 구성요건인 노동과 자본에서 인간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오랑케로 몰아가며 오랑케에 의해 …

 

‘악화가 양화를 구축 한다’ *

 

경제학 정의가 이 곳에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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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영국의 금융가 Thomas Gresham이 제창한 법칙으로

“bad money will drive good money out of circulation”을 옮긴 것으로

원래의 의미는 시장에 좋은 품질의 화폐와 나쁜 품질의 화폐가 동시에 존재할 때 품질이 떨어지는 화폐만 남고 좋은 화폐는 사라진다는 것,

자질이 높은 사람은 조직에서 사라지고 자질이 낮은 사람들만 남게 된다는 의미로도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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