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진정한 강자

 

영주지방철도청은 영주시의 외곽 언덕배기 외진 곳에 있었다.

당시에는 …

 

동기생 20여명과 함께 A5 용지 크기의 발령장을 수여받았다.

아직 장난기가 채 가시지 않은 나이였다.

지방철도청장의 훈시를 들을 때였다.

도열한 동기생 중 한 명이 훈시 중 웃어 버렸다.

갑자기 청장이 호통을 쳤다.

식이 끝난 후 각 국장들이 동기생 한명에게 다가가 그 동기생의 이름을 추궁하며 각자의 수첩에 부지런히 적었다.

그 황망함이란 …

‘아! 이것이 사회구나, 내가 이런 사회에 첫발을 내 딛었구나’

과잉충성…
호들갑…

어린마음에도 유치해보였다.

그런 강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에겐 약자로 누구에겐 강자로 이렇게 추해질 수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대우자동차의 구조조정에 따른 집단해고사건을 맡은 이후 한때 민주노무사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회사측 업무를 보면서 민주노무사란 호칭은 금방 사라졌고,

어느 시점부터는 악질노무사란 말을 듣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의 편에 선 노무사는 민주이고 사업주의 편에 선 노무사는 악질인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악질은 아니지 않은가?

 

사업주도 약자가 되는 세상이었다.

노사분규가 발생하면 분위기 조성만으로 한순간에 사업주는 악질로 몰려버렸다.

그간의 모든 과정이 도외시되고 악덕 사업주로 만들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회사의 규모가 커졌고 사업상의 이윤이 창출되는 것 같은데 분배는 원하는 대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그마한 사업장을 운영하던 시절에는 사장도 자신들이나 마찬가지였었는데 이제는 골프백을 메고 다니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甲에게 오더를 받기위해 동분서주 하는 줄은 모르고 …

자신들의 甲인 사장이 또 다른 곳에서는 약한 乙인줄은 모르면서 …

이러다가 발생한 노동조합에 대하여 외롭게 홀로 대응하는 사업주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법적인 조언을 하는 노무사를 두고 그냥 악질이라고 치부한단 말인가?

 

언젠가 유명한 학원 강사들의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그 강사중의 한명이 계속 어느 국회의원의 이름을 들먹였다.

노동청에, 근로감독관에게 전화를 했다고,

압력을 넣었다고 …

정말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다던 그 국회의원의 힘이 작용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유리하게 해결되었다.

그는 모든 공을 그 국회의원의 도움으로 돌렸다.

 

할 말을 잃었다.

나의 법적조력이 그 전부였다고 강변 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스스로 약자였다.

뭔가에 의지하고 싶은 …

 

강원도 철암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열아홉 살, 만 나이 18살

저녁 6시 반 통근열차였던가.

기억이 가물하다.

강원도 철암에서 경북 영주간 완행 통근열차 …

내 나이뻘의 아들이 있다는 박 모 기관사와 동승 근무이었다.

영주에 가면 내 동기생들도 있고…

꿈에 부풀은 출발이었다.

 

진행을 나타내는 파란불이 들어왔다.

완목신호기(주간에 쉽게 분별하기위한 팔모양의 나무로 된 신호기로 평행이면 정지, 밑으로 꺽이면 진행을 의미한다)도  45도로 꺽였고 …

 

“1번 출발신호기, 진행”

 

큰 소리로 지적확인(승무원들이 손으로 목표물을 지적하면서 큰소리로 복명복창을 하여 안전에 대한  기억력과 주의력을 높이는 일련의 행위)을 하였다.

 

철암역을 출발하여 터널을 빠져 나오면 계속 내리막길이고 커브를 돌아가면  강원탄좌로 들어가는 건널목이 나타난다.

 

멀리 건널목 위에 사람이 보였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큰일이다.

 

기적을 울렸다. 연속으로 …
“빠아앙, 빵빵빵…”

‘제발 좀 빨리 지나가라, 제발’

기관차가 통과하기 전에 그가 건널목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단말마처럼 외쳤다.

“비-상, 비상”

순간 비상제동장치의 공기를 찢는 굉음과 동시에 운전실내의 먼지 냄새(?)가 확 치솟았다.

 

내리막의 무거운 기관차는 시속 80킬로미터에서 비상브레이크를 잡아도 대략  300미터 정도는 지나가서야 정차할 수 있다.
기관차는 도저히 건널목 앞에서 멈출 것 같지 않았다.

 

死傷事故(사상사고)였다.

책임감에 두려움도 없었다.

배운 데로 처리(?)했다.

 

몇 달 후,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의 소환장을 받았다.

오전 9시까지 검찰청으로  출두하라는 것이다.

새벽 통근열차를 탔다.

영주로 가서 다시 안동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탔다.

검찰청 000호 검사실로 갔다.

 

30대초로 보이는 검찰수사관이 이름을 묻고는 소환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무료했다.

잡지책을 보고 있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도대체 부르질 않는다.

 

11시 반 쯤 문이 열리고 머리를 쑥 디밀며 검찰수사관이

 

“식사하고 1시에 오세요”

 

라고 했다.

허탈하게…

‘ 나도 공무원이다  @@,
내가 하는 업무도, 니가 하는 업무처럼 …
니만 국가의 녹을 먹느냐?  ‘

 

아침 겸 점심으로 국밥을 한 그릇 사먹고,  1시 이전에 다시 소환자대기실로 갔다.

늦으면 혼날까봐 …

뭔가 불이익을 받을까봐 …

 

오후 2시쯤 되어서야

마침내 검사실로 소환(?)되었다.

처음 가본 검사실

철제의자에 앉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각선으로 한켠에는 포승줄에 묶인 채 조사를 받고 있는 사람,
그리고 내 옆 의자에는 몸이 비대한 50대의 남자가 나처럼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다리가 떨렸다.

18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

한동안 드르륵 거리는 타자기 소리를 들으며 조사를 받고 있던 중
커피포트와 찻잔을 둘러싼 보자기를 든 다방아가씨가 들어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테이블 위에서 보자기를 풀고 달그락거리며 커피 잔에 커피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때 나를 조사하던 수사관이

 

“아가씨! 뭐야?”

 

라고 고함을 쳤다.

순간 움찔하며 내가 더 놀랬다.

아가씨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커피를 날랐다.

내 앞 책상위에도,
옆 자리에도,
포승줄에 묶인 사람에게도…

 

수사관은 자신의 말에 아무 대꾸조차 없자 화가 났는지
다시 한 번

“어이! 이 커피 뭐야?”

 

라고 하다가 우리를 둘러보면서

 

“누가 커피 시켰어?”

취조하듯 물었다.

그러자 내 옆의 빵공장 사장이(조사를 받는 중에 들어보니 빵공장 사장인데 직원들 월급을 못줘서 소환되어 온 모양이었다)

 

“제가 주문한 것입니다. 드십시오”

 

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였고

그제서야 다방아가씨가 수사관은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돈 안 받을 테니 그냥 마시세요!”

 

라며 천연덕스럽게 너무나 당당하고 거침없이 말을 던지는 것이었다.

 

빵 공장 사장이 검사실에 조사를 받으러 오기 전에 미리 검찰청사 입구의 다방에서 커피를 주문해 놓고 들어 온 것이었다.

넉넉한 양으로 …

30여년전 그 당시에나 있을 법한 풍경이었다.

 

결국 그 수사관을 제외하고 검사실 안의 모두가 후르륵거리며 커피를 마셨다.

달싹했다.

긴장된 마음이 확 녹아내릴 정도로 …

 

짜릿했다.

나 역시 다방아가씨라고 우습게 보았던 그 당시
그 세상에 던진 아가씨의 그 한마디 …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
그 목소리는…

살아오는 동안 늘 귓가를 울렸다.

세상에서 가장 대범하게…

주눅든 나 같은 말단 공무원이나,  …

뉴스 시간에 검찰청에서 고개도 못 들고 허둥대는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은 대적도 못할 …

 

그 용기는 …

강자

진정한 강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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